“소금 1작은 술, 다진 마늘 1작은 술, 깨소금 조금……”

 

   오늘은 조리법을 살짝 바꿨다. 꽤 먹을 만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아니다. 왜 그 맛이 나지 않는 걸까 생각하며 여덟 해 전의 미나리 무침의 맛을 곱씹었다.

 

   여덟 해 전, 우리 가족은 아빠가 친구의 보증 서류에 사인함으로써 다른 가족의 짐까지 짊어졌다. 누군가 말했던가. 세상에는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가난이라고. 부모님은 가난의 무게를 드러내려 하지 않았지만, 가난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열네 살 소녀였던 나에게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가난의 그림자는 어린 나를 송두리째 삼켰고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가난의 그림자는 열네 살 내 키보다 훨씬 컸기에 나는 그 그림자보다 더 큰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나는 크고 위대한 것에 허기를 느꼈다.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들을 닮아가려 애쓴 것이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그리고 몇 십 년 장기 계획까지 세웠고 내 인생의 시간표가 모쪼록 순행하기를 바라며 책상 위에 크게 써 붙여 놓았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자연의 시간표는 역행하도록 하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가볍고 사소한 것이었다. 바로 미나리 무침 때문이었다. 우리 집은 봄이 오면 미나리 무침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집 봄의 전령사는 개나리나 벚꽃이 아닌 미나리 무침인 셈이었는데 나물의 쓴맛을 싫어하는 나에게는 참으로 달갑지 않은 전령사였다. “오늘도 미나리 무침이야? 난 미나리 싫어. 쓰단 말이야. 햄 없어?”라는 나의 투정에 엄마는미나리가 몸에 얼마나 좋은데. 먹어버릇하면 맛있어. 먹어봐.”라고 응수하곤 했다.

 

   “밥은 먹고 가야지!”, “밥은 먹고 들어온 거지?”, “집에서 밥 좀 먹어.” 사실 무엇보다도 달갑지 않았던 것은 내가 밥을 먹었는지가 지상 어떤 과제보다도 우선인 엄마였다. 그맘때의 나는 그럴듯해 보이는 성공한 사람들의 인간상과는 너무 다른 엄마의 단순한 일상이 너무나도 작아만 보였다. 자연히 엄마의 말은 들리지 않았고, 엄마의 밥상 또한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정성스레 차려진 밥상을 뒤로 한 채 학교로 갔다.

 

   책을 읽다가 인간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것이라는 문장에 빨간 밑줄을 치고 별표를 했다. 그 문장을 몸소 증명이라도 하듯 하교 후 친구 집에서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기 일쑤였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는 날보다 먹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내가 밥을 먹고 들어간다고 말을 해도 엄마는 항상 내 몫의 밥까지도 함께 준비해 두었다. 왜 그러냐는 의아한 물음에 엄마의 대답은 단호했다. “네가 혹시 마음이 바뀌어서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을 수도 있잖아. 그때 저녁을 못 먹으면 안 되니까. 저녁을 먹어도 밤늦게 와서 배고플 수도 있고.”

 

   인생이 계획한 시간표대로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인간의 시간표는 지구에게는 한낱 먼지 같은 것이었을까? 늘 그렇듯 밥상 위에 미나리가 어김없이 피어나던 그 해 봄, 엄마는 사고를 당했다. 어떤 선택권도 없이 나는 내 인생의 시간표에 넣지 않았던,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엄마와의 마지막을 마주해야 했다.

 

 “밥 거르지 말고, 아프지 말고……”

 

   엄마의 마지막 말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명이 다해가는 순간에도 엄마는 내 밥을 걱정했다. 장례식장에서 몇 년 같은 며칠을 보내고 엄마를 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갑게 식은 채로 누워 있는 엄마는 체온의 차이만 있을 뿐 생전의 모습과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부르면 깨어날 것 같은 착각에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차갑게 식은 엄마를, 대답 없는 이름을 몇 번이고 더 부르면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차이는 체온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온이 사라지면 인간은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엄마의 체온이 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체온을 함께 나눴어야 했다는 것을.


   엄마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허기를 달래러 주방으로 향했다. 온 가족이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생활한 탓에 냉장고 속 반찬은 그대로였다. 미나리가 자라나는 그곳에 잠들어 있을 엄마처럼 냉장고 구석의 한편에는 미나리 무침이 잠들어 있었다. 시큼하게 쉰 채로.


   먹지 못하게 된 미나리 무침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린 후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햄을 구웠지만 한 입 베어 먹은 후 수저를 내려놓았다. 엄마가 만든 미나리 무침이 먹고 싶었다. 하지만 더해오는 허기만이 미나리 무침의 부재를 온몸으로 알려줄 뿐이었다. 그때 문득 나를 기다리며 나 없는 식탁에서 홀로 앉아 밥을 먹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몸 속 세포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두었던 눈물들이 터져 나오듯 울음이 터졌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읊조렸다.

 

 “엄마, 미안해……”

 

   그 이후 나는 성공담을 찾아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알 수 없는 배신감이 일어서였다. 그 대신 소설을 읽었다. 존재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존재할 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좋았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주인공과 함께 소설 속에서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사람을 만났다. 나의 밥을 걱정해주는 일이 엄마에게는 어떤 위대한 업적보다도 의미 있는 일인 것처럼 소설 속의 인간들은 각자의 생의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생의 이별이란 이제는 그때 그 미나리 무침을 못 먹는다는 슬픔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잠들어 버린 미나리 무침 때문에 생긴 허기를 채워가며 나는 나의 방식으로 드리워진 그림자를 걷어내 갔다.

 

   인간이 긴 숨을 쉴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사실 일상의 사소한 숨들일지도 모른다.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그런 사소한 행위들이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피와 살이 되는 건지도. 만물의 영장이라며 위세를 떨치는 인간도 생명의 둘레를 벗어나서는 숨을 쉴 수 없다.

 

   눈앞의 미나리 무침을 먹음으로써 우리는 오늘도 심장이 뛰며 체온을 가진다. 누군가와 함께 나눌 그 체온을.

 

   미나리 무침을 다시 집어먹어 보았다. 쓴 줄만 알았는데 달큼한 끝 맛이 혀를 감쌌다.



*본 게시물은 2018 광화문글판 대학생 에세이 공모전 수상작으로 상업적 용도의 사용, 무단전제, 불법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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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교보생명 교보생명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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